벽시계가 떠난 자리 / 박현수
벽시계를
벽에서 떼어놓았는데도
눈이 자꾸 벽으로 간다
벽시계가
풀어놓았던 째깍거림의 위치만
여기 어디쯤이란 듯
시간은
그을음만 남기고
못 자리는
주사바늘 자국처럼 남아 있다
벽은 한동안
환상통을 앓는다
벽시계에서
시계를 떼어내어도
눈은 아픈 데로 가는 것이다
*출처: 박현수 시집 『사물에 말 건네기』, 울력, 2020.
*약력: 1966년 경북 봉화 출생, 세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서울대학교 대학원 졸업. 현재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교수.
시인은 벽시계를 떼어낸 벽 자국을 바라본다.
빈 벽에서는 의미가 슬금슬금 올라오니 시인은 그것들과 대화를 한다.
식구처럼 오래 같이 살았던 시계가 떠나자 벽은 환상통을 앓는다.
눈은 늘 아픈 데로 가기에 못 자리가 상처로 보인다.
우리 역시 마음의 벽이 생기면 환상통이 아니라 실제로 통증을 느낀다.
온전한 몸에서 하나가 떨어져 나가면 환상통을 앓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너와 내가 공유했던 시간은 사라지고 덩그러니 시계처럼 아픔만 남기 때문이다.
*참고
‘환상통(幻想痛, phantom pain)’은 의학적 용어로 절단된 사지에서 느끼는 통증성 감각 이상을 말한다.
*출처: 빛나는 세상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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