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쨍한 사랑노래 / 황동규

믈헐다 2022. 5. 20. 23:41

쨍한 사랑노래 / 황동규

 

게처럼 꽉 물고 놓지 않으려는 마음을

게발처럼 뚝뚝 끊어버리고

마음 없이 살고 싶다.

조용히, 방금 스쳐간

구름보다도 조용히,

마음 비우고가 아니라

그냥 마음 없이 살고 싶다.

저물녘, 마음 속 흐르던 강물들 서로 얽혀

온 길 갈 길 잃고 헤맬 때

어떤 강물은 가슴 답답해 둔치에 기어올랐다가

할 수 없이 흘러내린다.

그 흘러내린 자리를

마음 사라진 자리로 삼고 싶다.

내림 줄 쳐진 시간 본 적이 있는가

 

*출처: 황동규 시집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 문학과지성사, 2003.

*약력: 1938년 평안남도 숙천(肅川)에서 소설가 황순원(黃順元)의 맏아들로 출생.

         1946년 가족과 함께 월남해 서울에서 성장.

         서울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문리과 영어영문학 학사 및 석사학위 취득.

 

 

마음을 비우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마음 없이 살고 싶다고 한다.

그것은 욕망과 집착으로부터 자유롭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사랑이란 마음을 비운다고 하여 쉽게 잊히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조용히 살고 싶지만 마음은 늘 쨍한 사랑 노래를 부르고 있지 않은가.

 

*출처: 빛나는 세상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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