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발견 / 황인숙
소스 맛에는 중독성이 있다
때로 소스를 맛있게 먹기 위해
돈가스가 존재하는 게 아닌가 싶다
돈가스 소스는 돈가스를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게
연구하고 만든 것일 테지만
소스만 있으면 어떤 특정 음식의 맛을
상당 정도 느낄 수 있다
예컨대 맨밥에 돈가스 소스를 끼얹어 먹으면
돈가스와 흡사한 맛이 난다
시작법은 시의 소스
제 소스의 레시피를 가진 시인들이 부럽다
언제라도 한 접시 먹음직한 시를 내놓는 그들!
나는 레시피도 없고,
찬장 깊숙한 데서 꺼낸 인스턴트 돈가스 소스는
유통기한이 1년이나 지났다
그래도 가난한 나는
맛있게 먹지
*출처: 황인숙 시집 『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 2016.
*약력: 1958년 서울 출생,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맛을 돋우기 위한 ‘소스(sauce)’처럼 ‘시작(詩作)’도 그럴 수 없을까.
맛깔스런 시를 쓰기 위해 시인의 고심은 깊어질 것이다.
삶의 과즙처럼 깊은 단맛과 감칠맛을 내는 시는
의외로 생활의 발견처럼 사소한 것에서부터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화자는 “제 소스의 레시피를 가진 시인들이 부럽다”며
“유통기한이 1년이나 지”난 것들을 꺼내 먹는다며 자신의 심정을 토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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