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꽃밭에서 / 박영희
믈헐다
2021. 10. 23. 01:13
꽃밭에서
봉선화 분꽃 피어 있는 꽃밭에서
스무살 시절을 생각해보았습니다
꽃밭 가득
온통 꽃들뿐이었습니다
꽃대도 이파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서른을 생각하니
피어 있는 꽃들 어느덧 나이를 닮아갑니다
진분홍 봉선화는 나비를 부르고
코스모스는 잠자리를 부릅니다
잠시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았습니다
구름인 듯 바람인 듯
쓸쓸하게 흘러가는 마흔,
마흔을 생각하니 옛사랑의 그림자가
꿀벌들처럼 잉잉거리며 꽃밭 주변을 맴돕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일까요
쉰은 온데간데없고
어느새 예순이 되어버린 나는
꽃보다는 씨앗에 눈이 먼저 가는 겁니다
꽃 지는 건 두렵지 않으나
씨앗들 썩을까봐 장마가 염려되는 겁니다
오늘은
꽃밭에서 한 생애를 다 살아버렸습니다
*출처: 박영희 시집 『팽이는 서고 싶다』, 창작과비평사, 2001.
(빛나는세상 나눔 공간 '수채화님' 제공)
스무 살 시절에는 온통 꽃밭에 핀 꽃들만 보이다가
서른을 생각하니 꽃과 함께 어우러지는 나비와 잠자리도 보였다.
잠시 하늘을 보니 구름인 듯 바람인 듯 마흔이 되고
꽃밭에는 옛사랑의 그림자만 아른거린다.
쉰은 잠시, 어느새 예순이 되니 꽃보다 떨어지는 씨앗에 눈길이 간다.
화자는 사람의 한뉘를 꽃밭에다 비유하였다.
지금 당신의 꽃밭은 어느 시절인가요?
빛나는 세상에서 함께 하는 지금이 가장 아름다운 꽃밭이기를 바랍니다.
*참고
‘스무살’은 ‘스무√살’이 바른 표기이다.
‘한뉘’는 살아 있는 동안의 ‘한평생’이라는 뜻으로 아름다운 순우리말이다.
*출처: 빛나는 세상 - Daum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