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친구 / 이산하
믈헐다
2021. 10. 23. 01:34
친구 / 이산하
시골의 초등학교 2학년 때 지각을 할 것 같아
열심히 달리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팔과 무릎이 까져 아파서 울려고 하는데
뒤따라 달려오던 아이도 내 옆에 넘어졌다.
그러자 울음 대신 웃음이 절로 터져나왔다.
우리는 서로 손잡고 벌떡 일어나 함께 달렸다.
40년 뒤 내가 친구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그때 고마웠어.”
“뭐가?”
“어릴 때 니가 내 옆에 일부러 넘어져준 거.”
“짜식, 뭐 그런 걸 아직도, 하하하……”
*출처: 이산하 시집 『악의 평범성』, 창비, 2021.
(사진 출처: 소중한 날의 꿈, 위드인뉴스, 2021.06.23.)
내가 넘어져 울상일 때 내 옆에 일부러 넘어져준 친구가 있을까.
아니 누군가 넘어져 울상일 때 내가 같이 넘어져준 적은 있었던가.
슬쩍 돌아보고 미소를 지으며 나 혼자 먼저 달려갔지 않은가.
“정승의 말이 죽은 데는 문상을 가도 정승 죽은 데는 문상을 안 간다”는
옛말로 위안을 삼기에는 자신에게 화도 나고 슬프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출처: 빛나는 세상 - Daum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