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쓸쓸한 말 / 김형로
믈헐다
2021. 12. 14. 01:12
쓸쓸한 말 / 김형로
멀리 있는 벗이 전화를 했다
어떻게 지내나 안부를 묻고
무심한 세월 탓도 하고
그냥그냥 지나간 청춘의 일 그리워
니가 오든 내가 가든,
한 번 보자며 전화를 끊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인 듯
카톡 사진으로 근황을 훔치다가
니가 오든 내가 가든,
게으른 약속 생각나 내가 전화를 했다
목단꽃 하나 들면 니가 거기 있었다고
그 말 전하고 싶었는데···
오가지 못한 그 사이
습관처럼 굳어진
쓸쓸한 말
니가 오든 내가 가든···
그 사이에 꽃이 말없이 졌다
*출처: 김형로 시집 『미륵을 묻다』, 신생, 2019.
*약력: 1958년 경남 창원 출생, 부산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우리는 흔히 얼굴 한번 보자 느니 밥 한번 먹자 느니 인사를 한다.
정을 담아 한 말일 수도 있고 인사치레로 한 말일 수도 있다.
시인도 오랜만에 통화한 친구와 그렇게 대화를 나누었다.
네가 오든 내가 가든 한 번 보자는 그 말을 또 습관처럼 건네며 전화를 끊었다.
보고 싶은 마음을 뒤로 미루는 사이 다시는 못 볼 얼굴이 되었다.
당장 약속을 만들고 차라도 한잔 나누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이 시를 썼을 것이다.
*참고
시인은 경상도에서 태어나고 자라 경상도식 구어체로 표현하였다.
‘그냥그냥’은 '그냥' 또는 ‘그냥저냥’, ‘니가’는 ‘네가’, ‘목단꽃’은 ‘모란꽃’ 또는 ‘목단화’가 바른 표기이다.
*출처: 빛나는 세상 - Daum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