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소를 웃긴 꽃​​ / 윤희상

믈헐다 2021. 12. 15. 01:45

소를 웃긴 꽃​​ / 윤희상

 

나주 들판에서

정말 소가 웃더라니까

꽃이 소를 웃긴 것이지

풀을 뜯는

소의 발밑에서

마침 꽃이 핀 거야

소는 간지러웠던 것이지

그것만이 아니라,

피는 꽃이 소를 살짝 들어 올린 거야

그래서,

소가 꽃 위에 잠깐 뜬 셈이지

하마터면,

소가 중심을 잃고

쓰러질 뻔한 것이지

 

*출처: 윤희상 시집 『소를 웃긴 꽃』, 문학동네, 2007.

*약력: 1961년 전남 나주시 영산포 출생,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풀을 뜯는 소가 다리에 붙은 벌레나 파리를 쫓기 위해 한쪽 발을 드는 경우가 있다.

그것을 화자는 풀꽃이 소의 발을 간지럼 태우는 걸로 묘사를 하였다.

심지어 소의 발밑에서 여린 풀이 꽃을 피워 덩치 큰 소를 들어 올린다고까지 허풍을 친다.

그러나 그러한 상상력과 허풍에 피식 하고 웃을 수 있다는 것도 소소한 행복이지 않은가.

사실 시는 난해하게 쓰는 것보다 쉽게 쓰는 것이 더 어려울 때가 있다.

동시 창작을 건너뛴 시인들은 이렇게 동화적인 시를 창작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상투적인 표현과 연애편지투로 쓴 시들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말이다.

 

*참고

‘그래서’는 앞의 내용이 뒤의 내용의 원인이나 근거, 조건 따위가 될 때 쓰는 접속 부사이다.

시는 접속 부사를 쓰는 일이 흔치 않다. 또한 접속 부사 다음에 쉼표를 찍었다.

아마도 시인은 ‘그래서’와 ‘쉼표(,)를 넣었다가 뺐다가를 수도 없이 반복했을 것이다.

결국 '그래서,'를 넣은 것은 '그랬구나!'라는 공감의 의미가 아닐까. - 믈헐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