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비장소 / 유계영
믈헐다
2021. 12. 28. 01:03
비장소 / 유계영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 아무도 없었다
나는 나무와 나무 사이에서 별안간 생각에 잠긴다
희고 불어터진 나의 손이 앙증맞고 부드럽다는 생각
짧은 팔과 오동통한 다리가 제멋대로 휘청거린다는 생각
공원의 한복판에 나를 방치한 채 백 년쯤 흘렀다는 생각
겹겹의 산 뙤약볕을 추격하는 참매미의 울음소리
순박한 나의 부모들은 나무 뒤에 숨어서 희희 웃고 있다
*출처: 유계영 시집 『지금부터는 나의 입장』, 아침달, 2021.
*약력: 1985년 인천 출생,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비장소'란 없는 말이다.
'비(非)'란 '아님'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이다.
즉 시인은 장소에 대비하는 개념으로 장소가 아닌 곳을 지칭하는 것이다.
그러니 어떤 일이 이루어지거나 일어나는 곳이 아닌
구체성이 없이 사실이나 현실과 동떨어진 막연한 것을 의미할 수 있다.
프랑스의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조각 작품이 있다.
우리는 생각하는 사람하면 고뇌와 고독을 먼저 떠올린다.
어쩌면 이 시에서 말하는 비장소는 '고뇌'와 '고독'이 아닐까.
군중 속에서 살고 있지만 늘 혼자라고 생각하는 우리들이기 때문이다.
*출처: 빛나는 세상 - Daum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