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얼룩진 보자기의 네 귀를 접는 / 박목월

믈헐다 2021. 12. 31. 01:09

얼룩진 보자기의 네 귀를 접는 / 박목월

 

얼룩진 보자기의

네 귀를 접듯

눈물과 뉘우침의 한 해를 챙긴다.

과오는 사람이므로

누구나 범할 수 있지만

새벽의

쓰디쓴 참회의 눈물은

누구나 맛볼 수 없다.

순결이여,

얼룩진 자리마다

깨끗하게 씻어내는

새로운 정신의 희열이여,

참으로 뉘우침으로

인간은 인간으로

새롭게 거듭하고

그 정신의 안쪽에 열리는

생기찬 과일로써

오늘의 신성한

여명을 맞이한다.

저무는 것은 저물고

마무리해야 할 것은

마무리하게 되는

마지막 여울목에서

우리들의 소망은

오로지 새로운 내일의

무구한 새벽을 맞이하는 일.

그리하여

순결한 인간으로서

거듭 태어나서

저 황홀한 광명과

신선한 정결함 속에서

핏줄 가닥가닥마다

팽창한

삶의 기쁨을 누리고

걸어가는 우리들의 발자국마다

사람된 길에

꽃을 피우게 하는 것

그 꿈과

의지와 뉘우침으로 오늘은 얼룩진 보자기의

네 귀를 다정하게

접는다.

 

*출처: 박목월 유고 시집 개정판 『크고 부드러운 손』, 민예원, 2003.

*약력: 朴木月(1915-1978), 본명은 박영종(朴泳鍾), 경북 월성(현, 경주) 출신.

         1935년 대구의 계성중학교를 졸업 후 도일(渡日), 귀국 후 대구 계성중학교와 이화여자고등학교 교사 재직,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연세대학교·홍익대학교·한양대학교 교수로 재임.

 

(사진 출처 : 경북 울진군청 홈페이지)

 

해마다 이맘때면 다사다난이라는 말을 곧잘 떠올린다.

아쉬움이 많았다며 그런저런 이유로 새해에는 만사형통과 축복의 해가 되길 바란다.

눈물도 있었고 뉘우침도 있었지만 이젠 그것들을 보자기 안에 넣어 다소곳하게 접어야 할 때다.

좋았든 나빴든 2021년이라는 세월의 느낌표를 달아 멀리 보내야 할 순간이다.

신축년(辛丑年)은 가고 임인년(壬寅年), 그러니까 범띠 해가 밝아온다.

시절이 다해 아득한 세월 속으로 사라지는 2021년이여 부디 잘 가시게.

 

*출처: 빛나는 세상 - Daum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