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얼굴 반찬 / 공광규
믈헐다
2022. 1. 30. 01:45
얼굴 반찬 / 공광규
옛날 밥상머리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얼굴이 있었고
어머니 아버지 얼굴과
형과 동생과 누나의 얼굴이 맛있게 놓여 있었습니다
가끔 이웃집 아저씨와 아주머니
먼 친척들이 와서
밥상머리에 간식처럼 앉아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외지에 나가 사는
고모와 삼촌이 외식처럼 앉아있기도 했습니다
이런 얼굴들이 풀잎 반찬과 잘 어울렸습니다
그러나 지금 내 새벽 밥상머리에는
고기반찬이 가득한 늦은 저녁 밥상머리에는
아들도 딸로 아내도 없습니다
모두 밥을 사료처럼 퍼 넣고
직장으로 학교로 동창회로 나간 것입니다
밥상머리에 얼굴 반찬이 없으니
인생에 재미라는 영양가가 없습니다
*출처: 공광규 시집 『얼굴반찬』, 지만지, 2014.
*약력: 1960년 충남 청양군 출생, 동국대 국문과·단국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
혼자 먹는 밥상만큼 쓸쓸한 풍경은 없으리라.
옛날에는 식구들이 모여야 비로소 밥상이 차려지고
웃어른이 수저를 드신 후에야 수저를 들었다.
밥상머리의 얼굴 밥상에 얼굴 반찬을 먹으며 우리는 밥을 먹었다.
그러나 요즘의 세태는 많이 달라졌다.
모두들 나가버리고 혼자 앉아 밥을 먹을 때도 허다할 것이다.
인생의 재미라는 영양가가 없는 밥만을 그저 우적우적 먹을 뿐이다.
살을 에는 듯한 삭풍에는 더더욱 옛날이 그리워지리라.
*출처: 빛나는 세상 - Daum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