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이별 이후 / 문정희

믈헐다 2022. 2. 11. 01:24

이별 이후 / 문정희

 

너 떠나간 지

세상의 달력으론 열흘 되었고

내 피의 달력으론 십 년 되었다

 

나 슬픈 것은

네가 없는데도

밤 오면 잠들어야 하고

끼니 오면

입 안 가득 밥알 떠 넣는 일이다

 

옛날 옛날적

그 사람 되어가며

그냥 그렇게 너를 잊는 일이다

 

이 아픔 그대로 있으면

그래서 숨막혀 나 죽으면

원도 없으리라

 

그러나 나 진실로 슬픈 것은

언젠가 너와 내가

이 뜨거움 까맣게 잊는다는 일이다

 

*출처: 문정희 시선집 『사랑의 기쁨』, 시월, 2010.

*약력: 1947년 전남 보성 출생, 서울여자대학교대학원 박사.

 

(사진은 빛나는세상 나눔 공간 '빛그림님' 제공)

 

연인과의 이별, 부부간의 이별, 부모 자식 간의 이별...

그냥 헤어짐이 아닌 누군가를 잃은 슬픔이 절절하게 묻어난다.

네가 떠난 지 세상의 달력으로는 고작 열흘이 되었지만

피의 달력으론 십 년이 되었다는 시어가 슬프다 못해 섬뜩하기까지 하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것,

시간이 지나면 까맣게 잊는다는 일이 더 슬프지 않겠는가.

 

*출처: 빛나는 세상 - Daum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