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꽃나무에 꽃이 지면 나무가 되지 / 양균원

믈헐다 2022. 5. 7. 00:12

꽃나무에 꽃이 지면 나무가 되지 / 양균원

 

지상의 좌표에서

이대로 죽 건재하길 바랄게

어쩌면 나도 그대들 사이에서 그럴 수 있으리라

피는 잎, 지는 꽃, 우는 벌, 숨은 새

서 있는 나무들과 나누는 수만 걸음의 살가움

가장 깊은 것은 배경에 있다는 듯이

익명의 방치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걸어갈수록 달콤해지는 것은

오직 푸르게 아무나가 되어 가는 나무들

더 이상 꽃의 이름으로 불러 줄 수 없는 누구나에게

얼굴 없는 바람이 멋대로

농을 걸고 있어서

 

*출처: 양균원 시집 『집밥의 왕자』, 파란, 2020.

*약력: 1960년 전남 담양 출생, 전남대학교 영문과, 고려대학교 대학원 영문과.

University of Washington 객원연구원과 관서외국어대학교 한국어 교수 이력.

 

(경북 영천 용전리 이팝나무)

 

무슨 나무에 꽃이 피면 무슨 꽃나무가 되고 꽃이 지면 무슨 나무가 된다.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니고 참 솔직한 명명이다

우리들도 꽃나무처럼 이름을 가졌으나 어떤 때는 아무개가 되기도 한다.

더 이상의 꽃나무가 아닌 오직 푸르게 아무나가 되어 가는 나무들처럼

사람과의 사이에서 경계가 사라지고 서로 농을 걸 수만 있다면야.

 

*출처: 빛나는 세상 - Daum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