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 / 정희성

허수아비 / 정희성

 

참새가 참새인 것은

제가 참새인 줄 모르기 때문

 

허수아비가 허수아비인 것은

제 머리에 새가 앉아도 가만있기 때문

 

허수아비 주인이 허수아비나 마찬가지인 것은

허수아비가 참새를 쫓아줄 거라 믿기 때문

 

이 땅의 농부가 농부인 것은

 

그런 줄 알면서도 벼 익는 들판에 허수아비를 세우고

우여어 우여어 허공에 헛손질하기 때문

 

*출처: 정희성 시집 『돌아다보면 문득』, 창비, 2008.

*약력: 1945년 경남 창원 출생, 서울대 국문과 졸업.

 

(사진은 경남 하동 평사리 벌판)

 

제가 참새인 줄 모르는 참새나

제 머리에 참새가 앉아도 가만있는 허수아비나

허수아비가 참새를 쫓아줄 거라 믿는 농부나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농부는 그런 줄 알면서도 허수아비를 세우고

허공에다 헛손질하는 것은 이 땅의 농부이기 때문이다.

 

*출처: 빛나는 세상 - Daum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