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

굽은 화초 / 박규리

믈헐다 2022. 6. 2. 00:02

굽은 화초 / 박규리

 

베란다 화초들이

일제히 창을 향해 잎 뻗치고 있다

그늘에 갇혀서도

악착같이 한쪽을 향하고 있다

바라는 것 오직 한 가지인 생활은

얼마나 눈물겨운가

눈이 없어도 분별해내는 밝음과 어두움

단단한 줄기 상처로 굽힐 줄 아는 마음

등 굽은 화초, 휘어진 마디마디에

슬프고도 아름다운 고집 배어 있다

 

*출처: 박규리 시집 『이 환장할 봄날에』, 창비, 2004.

*약력: 1960년 서울 출생,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정을 수료.

 

 

모양과 색도 다른 것들이 그 나름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 베란다 화초들이다.

바람과 햇빛 그리고 이따금 주는 물만으로도 푸릇푸릇 자란다지만

실상은 키우는 사람의 애정도 많이 필요하다.

화초가 햇빛이 있는 곳을 향해 필사적으로 몸을 비틀 수밖에 없는 것은

살기 위해서일 것이리라.

 

*참고

시인은 전북 고창에 있는 ‘미소사’에서 공양주(供養主, 절에서 밥 짓는 일을 주로 하는 사람)로 절 살림을 맡았었고,

등단 직후부터 8년여 동안 속세를 등진 채 외롭게 시를 써 왔다고 한다.

 

*출처: 빛나는 세상 - Daum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