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헌 신 / 복효근

믈헐다 2022. 6. 30. 01:48

헌 신 / 복효근

 

내 마음이 그대 발에 꼭 맞는 신발 같은 거였으면 좋겠다

거친 길 험한 길 딛고 가는 그대 발을 고이 받쳐

길 끝에 안착할 수 있다면

나를 신고 찍은 그대의 족적이 그대 삶이고 내 삶이니

네가 누구냐 물으면

그대 발치수와 발가락모양을 말해주리

끝이 없는 사랑이 어디 있으리

다만 그 끝의 자세가 사랑을 규정해주리니

그대 다시 나를 돌아보거나 말거나

먼 길 함께했다는 흔적이라면

이 발냄새마저도 따스히 보듬고 내가 먼저 낡아서

헌 신, 부디 헌신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출처: 복효근 시집 『마늘촛불』, 애지, 2017.

*약력: 1962년 전라북도 남원 출생, 전북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졸업.

 

(신구대학 식물원 내 신발 화분)

 

몸과 마음을 바쳐 있는 힘을 다함을 '헌신(獻身)'이라 한다.

시인은 그것을 낡은 신발인 헌 신과 연결시켰다.

'헌 신'도 '헌신'도 끝없는 사랑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화자는 발 냄새마저도 따사로이 보듬고 자신이 먼저 낡아서 헌신으로 남기를 바란다.

오롯이 자기를 희생함으로써 실현되는 지극한 사랑이지 않은가.

 

*출처: 빛나는 세상 - Daum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