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그리운 막차 / 송종찬

믈헐다 2022. 7. 8. 01:55

그리운 막차 / 송종찬

 

사랑할 때 나는 매일 막차를 탔다

차창에 기대어

전주에서 부안까지

솜처럼 연한 잠에 빠져들곤 했다

 

조금 조금만 하다가 막차를 놓치고

낡은 수첩을 뒤적일 때

그러나 모든 걸 포기하고 돌아서려는 순간까지

막차는 어서 오라 손짓했다

 

한여름의 폭우 속에서도

막차는 반딧불 같은 라이트를 켜고

굽이굽이 고개를 넘어갔다

 

돌아갈 수 없는 먼 길을 달려

막차는 집도 없는 종점에서 잠이 들었고

찬 이슬 새벽 첫차가 되어

해를 안고 내 곁을 떠나갔다

 

*출처: 송종찬 시집 그리운 막차, 실천문학사, 1999.

*약력남도의 바닷가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러시아 문학 전공(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

 

(전주에서 30분 거리의 상관면 죽림 마을의 편백나무 가로수 길)


시인은 매일 전북 전주에서 막차를 타고 부안까지 백여 리길을 간다.

아마 사랑하는 사람은 전주에 살고 시인은 부안에 사는 모양이다.

대합실에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아쉬운 작별에 머뭇거리다가 시간을 넘기곤 하나

막차는 매몰차게 떠나지 않고 어서 오라며 기다려 준다.

막차가 종점에 닿을 즈음 새벽이면 막차는 다시 첫차가 되듯이

두 사람의 사랑도 그렇게 마지막인 듯 처음인 듯 무르익어 가는 것이리라.

 

*출처: 빛나는 세상 - Daum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