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연戀 / 고미경
믈헐다
2022. 7. 23. 01:07
연戀 / 고미경
타오르는 마음 뒤편에서
그늘을 짜 왔어요
당신도 다 들여다볼 수 없는
우물 같은 그늘을
오늘, 목백일홍 나무 곁에서 열꽃인 양 피어난
꽃들 바라보다가 눈치채고 말았어요
뒤편에 꼭꼭 숨겨놓은 그늘을
울컥 젖어서 들여다보았어요
제 안이 얼마나 뜨거웠으면
꽃들은 저렇게 온몸으로 그늘을 짰을까요
서늘한 모시올로 짜 올린
우물빛 그늘!
당신 바라보다가
수굿이 펼쳐놓는 그늘 몇 필
*출처: 고미경 시집 『그 여름의 서쪽 해변』, 현대시학사, 2022.
*약력: 1964년 충남 보령 출생, 동국대학교 문예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
‘연(戀)’은 ‘사모하다’라는 뜻으로, 애틋하게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것을 말한다.
이 시는 “그 여름의 서쪽 해변”의 시집에서 총 4부 중 1부에 첫 번째로 등장한다.
그만큼 그리움이 애틋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연붉은빛 배롱나무꽃이 얼마나 뜨거웠으면 온몸으로 그늘을 짰다고 했듯이
화자의 속내가 또 얼마나 뜨거웠으면 수굿이 펼쳐놓는 그늘 몇 필이라 했을까.
*참고
‘수굿이’는 ‘고개를 조금 숙인 듯이’, ‘흥분이 꽤 가라앉은 듯이’, ‘꽤 다소곳이’의 뜻을 가진 아름다운 고유어 부사이다.
*출처: 빛나는 세상 - Daum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