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과일가게에서 / 최영미
믈헐다
2022. 7. 29. 00:51
과일가게에서 / 최영미
사과는 복숭아를 모르고
복숭아는 포도를 모르고
포도는 시어 토라진 밀감을 모르고
이렇게 너희는 서로 다른 곳에서 왔지만
어느 가을날 오후,
부부처럼 만만하게 등을 댄 채
밀고 당기며
붉으락푸르락
한 세상이 아름다워지려는구나
*출처: 최영미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 창작과비평사, 1994.
*약력: 1961년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과일가게에서 만난 사과, 복숭아, 포도, 밀감은 서로 모른다.
생산지도 다를뿐더러 모양과 색깔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부처럼 만만하게 등을 대고 밀고 당기면서
붉으락푸르락하니 한세상이 아름다워지려 한다.
과일뿐만 아니라 우리 사람들도 그렇지 않은가.
고향이 다르고 외모와 개성이 다르지만 한곳에 모여 산다.
때로는 서로 지지고 볶으며 상처도 주고 위로도 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면서 사는 것이 아름다운 세상살이 아니겠는가.
*출처: 빛나는 세상 - Daum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