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늙음에게 / 이대흠

믈헐다 2022. 10. 26. 06:22

늙음에게 / 이대흠

 

​눈이 먼 것이 아니라

눈이 가려 봅니다

 

​귀가 먼 것이 아니라

귀도 제 생각이 있어서

제가 듣고 싶은 것만 듣습니다

 

​다 내 것이라 여겼던 손발인데

손은 손대로 하고 싶은 것 하게 하고

발도 제 뜻대로 하라고 그냥 둡니다

 

​내 맘대로 이리저리 부리면

말을 듣지 않습니다

 

눈이 보여준 것만 보고

귀가 들려준 것만 듣고 삽니다

 

다만 꽃이 지는 소리를

눈으로 듣습니다

 

눈으로 듣고 귀로 보고

손으로는 마음을 만집니다

 

발은 또 천리 밖을 다녀와

걸음이 무겁습니다

 

*출처: 이대흠 시집,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 창비, 2018.

*약력: 1967년 전남 장흥 출생, 서울예술대학과 조선대 문예창작과 졸업, 목포대 국문과 문학박사.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눈도 잘 보이지 않고 귀도 잘 들리지 않기 마련이다.

그러니 늙는다는 것은 당연히 몸과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지금 불편을 느끼는 까닭은 젊었을 때와 비교하기 때문이 아닐까.

무엇이든 과거가 내 몸에 많이 쌓일수록 지금보다 과거에 더 집중하려고만 한다.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서 취사선택을 잘하는 것도 늙음의 지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