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꽃무릇 / 김해진

믈헐다 2022. 11. 15. 01:00

꽃무릇 / 김해진

 

잎 없이 피어도

외로워하지 않고

흔적 없이 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

세상에 뿌리는

억장 무너지는

너의 사랑 이야기

발길 멈추고

듣다가

읽다가

내 심장도 노을로 타오른다

 

*출처: 김해진 시집 오월붓꽃, 엠아이지, 2015.

*약력: 김해진 시인은 본인의 이력을 밝히지 않는 작가이다.

 

 

식물은 보통 이파리가 먼저 돋고 꽃은 나중에 피는 것이 일반적이긴 하나

이른 봄 산수유, 목련 따위는 꽃을 먼저 피우고 꽃이 질 무렵에 이파리가 돋는다.

이렇든 저렇든 이파리와 꽃은 함께 만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흔치 않게 꽃무릇처럼 꽃과 이파리가 아예 만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파리 없이 꽃대 끝에 꽃을 피우고 꽃이 다 지고서야 이파리가 돋는다.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하니 이루지 못하는 사랑의 상징으로 애틋함을 쉬 거두지 못한다.

꽃무릇의 억장 무너지는 사랑 이야기에 화자의 심장도 붉게 타오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