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연루와 주동 / 송경동
믈헐다
2022. 11. 16. 08:02
연루와 주동 / 송경동
그간 많은 사건에 연루되었다
더 연루될 곳을 찾아 바삐 쫓아다녔다
연루되는 것만으로는 성이 안 차
주동이 돼 보려고 기를 쓰기도 했다
그런 나는 아직도 반성하지 않고
어디엔가 더 깊이깊이 연루되고 싶다
더 옅게 엷게 연루되고 싶다
아름다운 당신 마음 자락에도
한 번쯤은 안간힘으로 매달려 연루되어 보고 싶고
이젠 선선한 바람이나 해 질 녘 노을에도
가만히 연루되어 보고 싶다
거기 어디에 주동이 따로 있고
중심과 주변이 따로 있겠는가
*출처: 송경동 시집 『꿈꾸는 소리하고 자빠졌네』, 창비, 2022.
*약력: 1967년 전남 보성 출생, 2001년 ‘내일을 여는 작가’와 ‘실천문학’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 시작.
시인의 삶은 온통 연루와 주동의 삶을 살았다.
시인의 뜨거운 삶만큼이나 이 시도 뜨겁다.
'연루'는 남이 저지른 범죄에 연관됨을 이르는 말이고,
'주동'은 어떤 일에 주장이 되어 행동하는 사람을 뜻한다.
'연루'는 '주동'에 비해 뭔지 모르게 께름칙하지만 한없이 서글퍼지기도 한다.
그러나 시인은 아름다운 당신 마음 자락에도 매달려 연루되고 싶고,
해 질 녘 노을에도 가만히 연루되어 보고 싶다고 노래한다.
연루이든 주동이든 그게 뭐가 대수이겠는가.
어차피 함께 가는 길이니 중심인물이면 어떻고 주변 인물이면 어떻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