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동짓날 밤이 오면 / 김내식
믈헐다
2022. 12. 22. 00:06
동짓날 밤이 오면 / 김내식
호롱불 심지 끝에
하늘하늘 타는 불꽃
뚫어진 문틈으로 들어 온
황소바람에 흔들리고
아랫목은 아이들 차지
청솔가지 매운 연기에
눈물짓는 어머니
샛노란 주둥이 떠올리며
새알 내알, 보글보글
팥죽 끓는다
윗목에 새끼 꼬던 아버지
귀신이 싫어하는 붉은 죽을
헛간, 굴뚝, 변소 간
두루 다니며 뿌려
액운을 몰아낸다
날마다 먹는 죽
밥 달라고 투정하면
새알을 안 먹으면
나이가 제자리라니
호호 불어 식혀 먹는다
하늘나라에 눈발이 흩날리고
문풍지 부르르 떠는
동짓날 밤이 오면
산에 계신 우리 부모님
더욱 그립다
*출처: 『산림문학』, 한국산림문학회, 2020 겨울호.
*약력: 1944년생, 동국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김귀녀 시인과는 부부이다.
일 년 중에서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동짓날에는 팥죽을 만들었다.
팥의 붉은 색이 악귀를 쫓는다고 믿었기에 집안 곳곳에 팥죽을 뿌리고 이웃과 나눠 먹는 풍습이 있다.
동지팥죽에 새알을 나이만큼 세어 먹었던 어린 날의 기억이 선명하다.
시인은 가난했지만 가족이 한자리에 둘러앉아 뜨거운 팥죽을 후후 불며 먹던 때가 그리운 것이다.
하늘나라에 눈발이 흩날리고 문풍지 부르르 떠는 동짓날 밤이 오면
산에 계신 부모님이 더욱 그립다는 말에 눈시울이 뜨거워지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