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개가 뼈를 물고 지나갈 때 / 박지웅
믈헐다
2022. 12. 28. 00:35
개가 뼈를 물고 지나갈 때 / 박지웅
누가 뼈 있는 말을 던지면
덥석, 받아 문다
너도 모르게 뛰어오르는 것이다
네 안에 주둥이는 재빠르다
말을 던진 사람은 모른다
점잖게 무너진 한 영리한 개가
제 앞에 돌아와 앉아 있는 것을
이것은 복종의 한 종류는 아니고
향후 실체를 좇아야 할 냄새의 영역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리냐 물으면
살맛 안 나는 뼈를 우물거리다
뱉지도 삼키지도 못할 짐작 앞에
낑낑대다 앞발로 귀 덮고 말 것이다
*출처: 박지웅 시집 『구름과 집 사이를 걸었다』, 문학동네, 2012.
*약력: 1969년 부산 출생,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말에 뼈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고 내뱉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알든 모르든 듣는 사람은 뼈 있는 상대의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말은 참으로 조심해서 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 시에서 시인은 그런 통상적인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보통은 뼈 있는 말을 들으면 대부분 참지 못하고 이내 반격을 한다지만,
힘 있는 자에겐 마치 개가 뼈다귀를 덥석 받아 물고 꼬리를 흔드는 세태를 꼬집는 것이다.
"살맛 안 나는 뼈를 우물거리다 / 뱉지도 삼키지도 못할 짐작 앞에 / 낑낑대다 앞발로 귀 덮고 말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눈과 귀를 막고 내가 지닌 부끄러움을 숨기며 천연스레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