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노끈 / 이성목

믈헐다 2023. 2. 2. 22:41

노끈 / 이성목

 

마당을 쓸자 빗자루 끝에서 끈이 풀렸다

그대를 생각하면 마음의 갈래가 많았다

생각을 하나로 묶어 헛간에 세워두었던 때도 있었다

마당을 다 쓸고도 빗자루에 자꾸 손이 갔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마른 꽃대를 볕 아래 놓으니

마지막 눈송이가 열린 창문으로 날아들어

남은 향기를 품고 사라지는 걸 보았다

몸을 묶었으나 함께 살지는 못했다

쩡쩡 얼어붙었던 물소리가 저수지를 떠나고 있었다

묶었던 것을 스르르 풀고 멀리서 개울이 흘러갔다

 

*출처: 이성목 시집 노끈, 애지, 2012.

*약력: 1962년 경북 선산 출생, 제주대학 법학과 졸업, 1996자유문학신인상으로 작품 활동 시작.

 

 

비울 것이 얼마나 많기에 자꾸만 빗자루에 손이 가는 것일까.

"묶었던 것을 스르르 풀고 멀리서 개울이 흘러" 가듯이

한번 풀린 인연의 끈을 다시 묶을 수도 없을 터인데 말이다.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될 때까지 손가락을 걸던 사람도

어느 순간 이별의 아픔을 겪을 때는 묶인 끈을 풀 수밖에 없지 않은가.

화자는 빗자루로 마당을 쓴 것이 아니라 마음을 쓴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