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나는 잠시 맹그로브를 보았다 / 주봉구

믈헐다 2023. 2. 28. 02:36

나는 잠시 맹그로브를 보았다 / 주봉구

 

여우비 내리고, 비거스렁이

그때마다 언뜻언뜻 하늘이 비쳤고

세상은 온통 색다른 풍경들

때로는 사람들도 짐승처럼 납작 엎드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쳐갔다.

반쯤 뿌리가 드러난 맹그로브의 수륙양생의 삶

잠시 운명을 같이한 롱 테일 보트를 탄 사람들은

보았고,

한限 칠십을 덧없이 보낸 사람은 알았다.

행복이란 것도 인생이란 것도 별것 아닌

잠시 나타난 저 무지개 같다는 것.

그것을 좇아 여기와 있는 나까지도

지금 맹그로브를 통과하고 있다.

 

*맹그로브(mangrove): 열대, 아열대의 식물.

 

*출처: 주봉구 시집 강풍주의보, 인간과문학사(신아출판사), 2021.

*약력: 1943년 전북 정읍 출생,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농학과 졸업, 동 대학 국문학과 3학년 1학기 수료.

 

 

'맹그로브나무는 조수에 따라 뿌리가 물속에 잠기기도 하고 나오기도 한다.

물속에서도 자랄 수 있는 식물들은 특수한 호흡근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아마 시인은 동남아 여행 중 맹그로브 숲을 보고 느끼면서 쓴 시가 아닌가 싶다.

강줄기를 따라 맹그로브 밀림 속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기후에서 사람의 한뉘를 생각했을 것이다.

"행복이란 것도 인생이란 것도 별것 아닌 / 잠시 나타난 저 무지개 같다는 것."

시인은 진리와 도를 깨닫기 위해 끊임없이 정진하는 구도자나 다름없지 않은가.

 

*참고

'비거스렁이'는 비가 갠 뒤에 바람이 불고 기온이 낮아지는 현상이다.

'한뉘'는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을 말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