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분리수거 / 최영미
믈헐다
2023. 3. 5. 01:27
분리수거 / 최영미
너를 향한 나의 애증을 분리수거할 수 있다면
원망은 원망끼리
그리움은 그리움끼리
맥주 깡통 따듯 한꺼번에 터트릴 수 있다면
2주마다 한 번씩 콱! 눌러 밟아 버린다면
너를 만난 오월과 너와 헤어진 시월을 기억의 서랍에 따로 모셔둔다면
아름다웠던 날들만 모아 꽃병에 꽂을 수 있다면
차라리, 홀로 자족했던 지난여름으로 돌아가
네가 준 환희와 고통을 너에게 되돌려줄 수 있다면
여름에 가을을, 네가 없어 끔찍했던 겨울을 미리 앓지 않아도 되리라
늦기 전에, 아주 더 늦기 전에
내 노래가 너를 건드린다면
말라비틀어진 세상의 가슴들을 흔들어 뛰게 한다면
어느 날 문득 우리를 깨우는 봄비처럼
아아- 우우- 허공에 메아리칠 수 있다면......
*출처: 최영미 시집 『꿈의 페달을 밟고』, 창작과 비평사, 1998.
*약력: 1961년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서른, 잔치는 끝났다』에 이어 두 번째 시집이다.
그의 시는 아이스크림이 얹힌 커피 같다.
아름답기도 하고 추하기도 하다는 말이다.
추한 것은 우리를 아프게 하지만 아름다운 것은 우리를 슬프게 하는 힘이 그의 시에는 숨어 있다.
- 책 소개에서 발췌 -
시인은 현실 앞에서 절망을 디디고 새로운 만남을 위한 '페달'을 밟기 시작하였다.
저 달처럼 차오르는 자신의 마음이 말할 수 없는 혀로 너를 부른다고 진술하고 있다.
즉, 진실의 너에게로 갈 수 있다면 다른 가치들 예컨대 '시'까지도 뿌리치겠다고 노래한다.
- 출판사 서평에서 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