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어머니의 애인 / 주용일

믈헐다 2023. 3. 17. 01:35

어머니의 애인 / 주용일

 

​일흔다섯 어머니에게

아직 여자가 남아 있는 것일까

때때로 어머니를 찾아와

두런두런 속삭이는 한복 입은 할아버지

팔순 너머의 세월 속에도

남자가 꿈틀거리고 있는 것일까

두 사람은 말이 없다

그 나이면 아무도 모르는 눈빛으로

서로의 남성과 여성을 애무할 수도 있겠다

나는, 시들어가는 꽃

어머니가 이쁘다

새벽녘 안간힘으로 끙ㅡ 뒷일을 보시며

푸른 목숨이나 푸른 사랑을 꿈꾸는,

오늘도 어머니는 머리 빗고 옷매 고르고

한복 할아버지를 기다린다

얼굴에 홍조까지 내비치며

어머니 속의 젊은 여자가 교태를 부린다

 

그토록 어머니의 한 생을 힘겹게 하던

아버지 가신 지 이십 년이 되었다

*출처: 주용일 시집 문자들의 다비식은 따뜻하다, 문학과경계사, 2003.

*약력: 1964년 충북 영동 출생, 한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KBS 1TV 인간극장 '백발의 연인', 2011년 작)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노인의 성문제가 사회적 쟁점이다.

자식으로서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가슴으로는 여전히 거부할 수밖에 없는 현상이다.

그러나 부모 중 어느 한쪽이 먼저 세상을 떠난다면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하지 않겠는가?'

이 화두에 나는 어떤 답을 내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