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희망 사육 / 박진형
믈헐다
2023. 3. 21. 01:01
희망 사육 / 박진형
버스 창밖 너머로 마주친 돼지 트럭
불안한 신음이 도로 따라 늘어질 때
출근길 안주머니에
숨 막히는 희망퇴직서
조금 더 나아가면 내 직장이 나오고
모퉁이 돌고 돌면 마침내 도살장이다
굽은 길 비틀거리며
길들여진 구두 뒷굽
알량한 퇴직 수당에 눈물은 필요 없다
유통기한 다 된 나를 마중 나온 동료들
사육지 돼지의 무리
나도 한때 한패였다
*출처: 박진형 시조집 『어디까지 희망입니까』, 책만드는집, 2022.
*약력: 1954년 전남 구례에서 출생하여 서울에서 성장, 서울대학교 불어교육과(학사), 불어불문학과(석사), 외국어교육과(박사 수료) 졸업.
전혀 어울리지 않은 '희망'과 '사육'이라는 두 단어가
한편으로 우리의 삶을 대변하고 있는 듯하니 가슴 아픈 일이다.
우리는 각자 희망을 안고 살아가지만 자신의 의지는 얼마큼 반영된 것일까.
사실 산다는 것이 어디 자신의 의지대로만 되는 것인가.
특히 직장인이라면 더할 것이니 말이다.
아닌 말로 사육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정신이 혼미해 질 것이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