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칼춤 / 박지웅

믈헐다 2023. 3. 21. 22:05

칼춤 / 박지웅

 

고향집에 가면

어미는 칼부터 든다

칼이 첫인사다

칼은 첫 문장이다

도마에 떨어지는 칼 소리

저 음절들을 맞추어 읽는다

부부의 물을 베던 칼

부엌에서 할짝할짝 울던 칼

나를 먹이고 키우던 칼

먼 길 돌아온 내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는 칼

어미는 날 앉히고

칼춤을 춘다

*출처: 박지웅 시집 구름과 집 사이를 걸었다, 문학동네, 2012.

*약력: 1969년 부산 출생,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밀양시 신안마을 '운심검무' 벽화)

 

고향집을 찾은 아들을 위해 어머니는 자식을 보자마자 부엌으로 달려가 칼을 잡는다.

그런 어머니도 다른 용도로 칼을 잡을 때도 있었다.

"부부의 물을 베던 칼"이었지만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였다.

사실 칼은 물건을 베거나 썰거나 깎는 데 쓰는 도구이긴 하지만 흉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머니의 칼은 가족을 위한 세상에서 가장 보배로운 검이요,

어머니의 칼춤만큼 아름다운 춤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