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꼬깃꼬깃 / 이재훈

믈헐다 2023. 4. 1. 05:52

꼬깃꼬깃 / 이재훈

 

뒷주머니에 접어 넣은 낡은 지갑.

가방 속에 넣어둔 쓰다만 시.

여행 가방 깊숙이 넣어둔 수영복.

딸아이에게 못 전해준 미안하다는 말.

경조사 봉투에서 넣었다 빼는 오만 원 한 장.

안주 없이 생맥주만 시켜도 되는 단골 노포.

두근거리는 이에게 보내다 만 문자메시지.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못하는 반 토막 난 주식.

우편함에서 몰래 꺼낸 세금 미납 고지서.

서랍 깊숙이 넣어둔 우울증 처방약.

 

어쩌면 이 세계의 전부인 꼬깃꼬깃.

 

*출처: 계간 시마詩魔 2022 3월호(11).

*약력: 1972년 강원 영월 출생,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 박사.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시인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시를 쓰는 그에게 경의를 표한다.

사실 사람은 누구나 꼬깃꼬깃 접은 마음을 내면 깊은 곳에 꽁꽁 숨기며 산다.

다른 누구에게 들키면 이내 쑥스러워질 수 있는 그런 꼬깃꼬깃한 마음 말이다.

겉으로 당당한 척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조금만 그 내면을 들춰보면,

마음 한 자락 어딘가에 꼬깃꼬깃 드리워져 있을 것이다.

어떤 때는 홀로 당당한 척 하늘 향해 고개 치켜세우고 있지만

어딘가에 숨겨진 꼬깃꼬깃한 마음 한 자락을 누군가에게 보이고 싶을 때도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