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가차 없이 아름답다 / 김주대

믈헐다 2023. 4. 11. 14:23

가차 없이 아름답다 / 김주대

 

빗방울 하나가

차 앞유리에 와서 몸을 내려놓고

속도를 마감한다

심장을 유리에 대고 납작하게 떨다가

충격에서 벗어난 뱀처럼 꿈틀거리더니

목탁 같은 눈망울로

차 안을 한번 들여다보고는

어떠한 사족(蛇足)도 없이 미끄러져, 문득

사라진다

 

*출처: 김주대 시집 그리움의 넓이, 창비, 2012.

*약력: 1965년 경북 상주 출생,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입학.

 

 

가차 없이 유리창에 몸을 던지고는 납작하게 떨다가

목탁 같은 눈망울로 차 안을 한번 들여다보고는 문득 사라져버리는 빗방울 하나.

어떠한 계산이나 사족도 없이 장렬히 몸을 던져 사라지는 것들에게는

처연함을 넘어서는 아름다움이 있다.

마치 동백꽃이 뚝 떨어지는 것처럼 모든 것을 가차 없이 불사르고

영원 속으로 사라지는 일이 아름답다고 보는 것이 시인의 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