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꽃 / 기형도

믈헐다 2023. 7. 22. 05:48

꽃 / 기형도

 

靈魂(영혼)이 타오르는 날이면

가슴앓는 그대 庭園(정원)에서

그대의

온 밤내 뜨겁게 토해내는 피가 되어

꽃으로 설 것이다.

 

​그대라면

내 허리를 잘리어도 좋으리.

 

짙은 입김으로

그대 가슴을 깁고

 

​바람 부는 곳으로 머리를 두면

선 채로 잠이 들어도 좋을 것이다.

 

*출처: 기형도, 기형도 전집, 문학과지성사, 2020.

*약력: 1960년 인천광역시 연평 출생,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1989년 향년 28세 뇌졸중으로 타계.

 

(물망초)

 

허리가 잘린 꽃이 얼마나 오래 꽃병에 머물 수 있는지는 몰라도

그대의 ‘꽃병’에라도 담길 수 있게 꽃이 되고 싶다고 한다.

“바람 부는 곳으로 머리를 두면 / 선 채로 잠이 들어도 좋”다니

그것이 사랑의 속성이리라.

꽃을 다 피우지도 못하고 꺾인 시인의 삶이지만

“뜨겁게 토해내는 피가 되어” 우리들의 마음에 영원히 핀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