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편지 / 권달웅
애비 보아라.
오래 찾아오지 않아 보고 싶었다.
어제는 날씨 찬데도 성반이 에미가 다녀갔다.
내 등에 업혀 자란 성반이 대학생이 되고 태어날 때 본
동완이가 중학생이 되었다니 시간은 참 빠르기도 하구나.
할머니, 할머니, 하고 따라다니다가 등을 긁어주면
금방 잠이 들던 성반이가 이 밤 따라 더 보고 싶구나.
왜 우느냐.
세상살이 다 눈물인데 헤어져 살아도 슬퍼할 게 없다.
아이들 키우며 그렁저렁 살다 보면 미운 정 고운 정도 들고 궂은 일 좋은 일도 있을 것이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라.
자주 찾아오지 못하는 애비 심정 내 다 알고 있다만 그래도 형제지간에는 정 있게 지내라.
사람 한 평생 그리 긴 것이 아니다.
잠깐인 인생을 미움이 없이 화목하고 건강하게 지내는 것이 제일이다.
애비 몸이 아프다니 걱정이다.
애비가 탈 없이 잘 사는 것을 보아야 차마 감을 수 없었던 내 눈을 감을 수 있지 않겠느냐.
너그러운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라.
오늘은 애비가 걱정이 되어 몇 자 적었다.
다음에 올 때는 성한 몸으로 성반이 동완이 앞세우고 에미와 같이 오너라.
*출처: 권달웅 시집 『감처럼』, 한국문학도서관, 2003.
*약력: 1943년 경북 봉화 출생,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참고
이 시는 산문 형식의 가로쓰기로 연결하여 쓴 시이긴 하나,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원문과는 행의 차이가 있음을 밝힙니다.
*출처: 빛나는 세상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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