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손 / 이상범
두 손을 펴든 채 가을볕을 받습니다
하늘빛이 내려와 우물처럼 고입니다
빈손에 어리는 어룽이 눈물보다 밝습니다
비워 둔 항아리에 소리들이 모입니다
눈발 같은 이야기가 정갈하게 씻깁니다
거둘 것 없는 마음이 억새꽃을 흩습니다
풀향기 같은 성좌가 머리 위에 얹힙니다
죄다 용서하고 용서 받고 싶습니다
가을 손 조용히 여미면 떠날 날도 보입니다.
*출처: 이상범 시집 『꿈꾸는 별자리』, 태학사, 2001. 『화엄벌판』, 시인생각, 2013.
*약력: 1935년 충북 진천 출생, 고교 졸업 후 육군에 입대하여 육군보병학교 졸업, 육군 소위로 임관 후 육군 소령으로 국군 의무사령부에서 예편.
이 시는 3연으로 초장, 중장, 종장의 형식인 우리나라 고유의 시조에 가깝다.
이 작품을 쓴 이상범 시조 시인은 시조를 쓴 세월만도 반백년이 넘는다.
노옹의 시인에게도 미움과 괴로움이 없었겠는가.
마음을 비우고 씻어내라는 노옹의 지혜가 머뭇거리는 우리의 등을 떠민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듯이 남들에게 마냥 베풀기는 어렵다.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고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가는 게 있어도 오는 게 없는 경우도 수두룩한 것이 세상사이다.
나무도 열매를 떨구고 이파리마저도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가을이란
용서하고 성찰하기에 참 좋은 계절이다.
*참고
‘어룽이’는 어룽어룽한 점이나 무늬. 또는 그런 점이나 무늬가 있는 짐승이나 물건을 말한다.
*출처: 빛나는 세상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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