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저수지 / 권정우

믈헐다 2021. 11. 24. 01:21

저수지 / 권정우

 

​자기 안에 발 담그는 것들을

물에 젖게 하는 법이 없다

 

모난 돌멩이라고

모난 파문으로 대답하지 않는다

검은 돌멩이라고

검은 파문으로 대답하지 않는다

 

산이고 구름이고

물가에 늘어선 나무며 나는 새까지

겹쳐서 들어가도

어느 것 하나 상처입지 않는다

 

바람은

쉴 새 없이 넘어가는

수면 위의 줄글을 다 읽기는 하는 건지

 

하늘이 들어와도 넘치지 않는다

바닥이 깊고도

높다

 

*출처: 권정우 시집 『허공에 지은 집』, 애지, 2010.

*약력: 1964년 서울 출생,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 문학박사, 현재 충북대 교수.

(사진은 밀양다목적댐 호수)

시인이 바라본 저수지는 자기 안에 발을 담가도 물에 젖게 하지 않는다.

모난 것, 검은 것까지 이것저것 다 안으면서도 품은 것들에게 상처도 주지 않는다.

화자는 바람에 일렁거리는 물결을 ‘줄글’로 묘사를 하였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표현인가.

하늘까지 들어와도 넘치지 않는다니 이 얼마나 숭고한 사랑인가.

 

*참고

‘줄글’은 한문에서, 구나 글자 수를 맞추지 아니하고 죽 잇따라 지은 글을 말한다.

 

 

*출처: 빛나는 세상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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