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친, 엄마 / 이경림
한 달 전에 돌아간 엄마 옷을 걸치고 시장에 간다
엄마의 팔이 들어갔던 구멍에 내 팔을 꿰고
엄마의 목이 들어갔던 구멍에 내 목을 꿰고
엄마의 다리가 들어갔던 구멍에 내 다리를 꿰!
고, 나는
엄마가 된다
걸을 때마다 펄렁펄렁
엄마 냄새가 풍긴다
—엄마...
—다 늙은 것이 엄마는 무슨...
걸친 엄마가 눈을 흘긴다
*출처: 이경림 시집 『상자들』, 랜덤하우스코리아, 2005.
*약력: 1947년 경북 문경 출생, 서울 창덕여자고등학교 졸업.
시인은 한 달 전에 돌아가신 엄마의 옷을 걸치고 시장을 간다.
한 달이라면 아직 엄마의 부재를 인식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시인은 엄마의 냄새를 거기서 맡고 엄마의 목소리를 거기서 듣는다.
엄마는 더 생생하게 살아있고 여전히 냄새를 풍기고 잔소리를 한다.
귀를 막고 싶었던 잔소리들이 이렇게 따뜻한 것인지 비로소 실감이 난다.
‘꿰! / 고, 나는 / 엄마가 된다’ 꿰 다음에 느낌표를 붙였다.
시인의 의도가 뭘까?
구멍구멍 내 몸을 꿰어 보았으나 옷만 걸친 뿐인 엄마란 걸 느낀다는 뜻일까.
엄마가 벗어놓고 간 옷은 바로 ‘나’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뜻일까.
*출처: 빛나는 세상 - Daum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