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비와 눈발 / 기명숙

믈헐다 2021. 12. 4. 01:26

비와 눈발 / 기명숙

 

빗소리보다 한 옥타브 낮고 눈발보다 고음

물음표보다 공손하고 느낌표보다 솔직한

아토피처럼 습관적인 비와 눈발 사이 오래된 습속

수면제 녹는 소리

 

눈꺼풀이 닫히며 헤어진 애인의 발자국 소리

슬픔 툭툭 털어 우산을 접고

비와 눈발 사이를 떠도는

터무니없이 당신을 용서하고픈 화해의 감정

투명한 물방울로 다녀간 그 사이

 

*출처: 기명숙 시집 『몸 밖의 안부를 묻다』, 모악, 2019.

*약력: 1967년 전남 목포 출생, 우석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사진은 빛나는세상 나눔 공간 '수채화 님' 제공)

 

이 시를 읽는 순간 화자의 아픔을 헤아리기 전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화자는 헤어진 애인과의 슬픔으로 잠 못 들 때는 수면제를 먹는다.

알약이 물 잔에서 녹는 것을 비와 눈발로 묘사를 하였다.

수면제는 애인과의 이별 후부터 먹는 오래된 습관이다.

약기운 탓에 환각인 듯 흐릿한 의식 너머로 애인의 발소리가 들린다.

비와 눈발 사이를 떠돌다 투명한 물방울로 다녀간 사이

당신에 대한 원망을 녹이며 화해의 감정이 스며든다.

이별의 슬픔이나 원망을 초월한 지독한 그리움이다.

 

*참고

‘발자국’은 발로 밟은 자리에 남은 모양을 말한다. 즉, 발자국은 소리가 아니고 흔적이다.

그러므로 ‘발자국 소리’가 아니라 ‘발소리’가 바른 표기이다.

‘용서하고픈’은 시적 표현으로 쓸 수는 있으나, 바른 표기는 ‘용서하고 싶은’이다.

 

*출처: 빛나는 세상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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