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면 안 된다던 말 / 이영광
아프면 안 된다
아프지 말아야 한다
아프면 앓고,
앓다가 숨 멎으면 내다 묻는
그런 곳 그러한 세월에
아프면 안 되었다
아프지 말아야 한다고
아픈 듯 슬픈 듯 다짐받던
식구들 번갈아 앓아눕고
픽픽 쓰러지는 동안
나는 한 번도 앓아눕지 않았다
마흔도 한참 넘어 처음 몸살에 시달릴 때
귀신한테 깔려 매 맞는 것 같던 때
아픈 사람이, 아프면 안 된다니
당신 날 웃기려는 거지?
그녀가 말했다
그렇게 헛소리한 게 맞았을 것이다
정신없이
나는 아프지 않았다
식구들 생각난다
아프면 안 된다니,
그런 코미디를 하면서도
웃지도 않고 살다 간
*출처: 이영광 시집 『나무는 간다』, 창비, 2013.
*약력: 1965년 경북 의성 출생, 고려대학교 영문과와 동대학원 국문과 졸업.
아픈 것만큼 슬픈 일이 있을까.
아픈 식구를 지켜보는 심정은 또 얼마나 괴로운가.
그 틈에서 아프지 않으려고 애쓰는 건 여북 가슴이 미어지겠는가.
식구들 번갈아 앓아눕고 픽픽 쓰러지는 동안
한 번도 앓아눕지 않았다는 시인의 말이 아픈 사람보다 더 아파 보인다.
'아프면 안 된다'는 말은 아파 본 사람만이 헤아릴 수 있으리라.
*출처: 빛나는 세상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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