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의 사랑 / 김광규
장독대 앞뜰
이끼 낀 시멘트 바닥에서
달팽이 두 마리
얼굴을 비비고 있다
요란한 천둥 번개
장대 같은 빗줄기 뚫고
여기까지 기어오는 데
얼마나 오래 걸렸을까
멀리서 그리움에 몸이 달아
그들은 아마 뛰어왔을 것이다
들리지 않는 이름 서로 부르며
움직이지 않는 속도로
숨가쁘게 달려와 그들은
이제 몸을 맞대고
기나긴 사랑 속삭인다
짤막한 사랑 담아둘
집 한 칸 마련하기 위하여
십 년을 바둥거린 나에게
날 때부터 집을 가진
달팽이의 사랑은
얼마나 멀고 긴 것일까
*출처: 김광규 시집 『좀팽이처럼』, 문학과지성사, 2001.
*약력: 1941년 서울 출생, 서울대 및 동대학원 독문과 졸업, 독일 유학 후 서울대 문학박사 학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집 한 칸 마련하려고 십 년을 바동거린 시인이다.
어느 날 사랑을 나누는 두 마리의 달팽이에 눈길이 갔다.
날 때부터 사랑의 보금자리를 안고 태어난 달팽이를 부러워하듯이 토로한다.
멀리서 그리움에 몸이 달아 그들은 멀리서 뛰어왔을 것이며,
요란한 천둥과 번개 치는 빗속을 뚫고 달려 온 달팽이의 절대적인 사랑에 찬사를 보낸다.
*출처: 빛나는 세상 - Daum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