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나무'가 달려왔다 / 이영식
네 살배기 꼬마가 달려왔다
엉거주춤 엎드려 받아 안은 내 품으로
함박꽃 한 다발이 뛰어들었다
함박웃음은 혼자 달려온 게 아니었다
손에 들린 바람개비가 딸려왔다
종종걸음 꽁지에 천사어린이집이 딸려왔다
빈 도시락이 딸랑거리며 딸려왔다
함박꽃 피워낸 햇볕도 바람도 딸려왔다
세상 별의별 꽃향기들이,
온갖 꿈 푸른 날개들이 딸려왔다
태어나 첫울음 터뜨린 뒤
고개 들고, 뒤집고, 기고, 앉고, 걷고…
일순 쉼도 없이 켜켜이 쌓아올린 생명책이
17㎏의 살과 뼈를 품고 딸려왔다
주름살로 접힐 뿐인 내 저녁의 시간 앞에
‘작은 나무’ 한 그루가 달려왔다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을 다시 품고
한아름 함박꽃 웃음으로 핫핫
내달려오는 것이었다
*출처: 이영식 시집 『꽃의 정치』, 지혜, 2020.
*약력: 1956년 경기도 이천 출생, 2000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네 살배기 꼬마가 달려오니 그와 함께 많은 것이 딸려왔다.
이 모든 것이 혼탁한 세상에서는 찾기 힘든 아름다운 것들이다.
햇볕도 바람도 꽃향기도 무엇보다 생명책과 작은 나무 한 그루가 내게 온 것이다.
작은 나무 한 그루는 포리스트 카터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에서 인용하였다.
그것은 주인공 인디언 꼬마의 이름이 ‘작은 나무’이기 때문이다.
*출처: 빛나는 세상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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