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꽃 / 송찬호
그해 봄 결혼식 날 아침 네가 집을 떠나면서 나보고 찔레나무숲에 가보라 하였다
나는 거울 앞에 앉아 한쪽 눈썹을 밀면서 그 눈썹자리에 초승달이 돋을 때쯤이면 너를 잊을 수 있겠다 장담하였던 것인데,
읍내 예식장이 떠들썩했겠다 신부도 기쁜 눈물 흘렸겠다 나는 기어이 찔레나무 숲으로 달려가 덤불 아래 엎어놓은 하얀 사기 사발 속 너의 편지를 읽긴 읽었던 것인데 차마 다 읽지는 못하였다
세월은 흘렀다 타관을 떠돌기 어언 이십 수년 삶이 그렇데 징소리 한 번에 화들짝 놀라 엉겁결에 무대에 뛰어오르는 거 어쩌다 고향 뒷산 그 옛 찔레나무 앞에 섰을 때 덤불 아래 그 흰빛 사기 희미한데,
예나 지금이나 찔레꽃은 하얬어라 벙어리처럼 하얬어라 눈썹도 없는 것이 꼭 눈썹도 없는 것이 찔레나무 덤불 아래에서 오월의 뱀이 울고 있다
*출처: 송찬호 시집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문학과지성사, 2009.
*약력: 1959년 충북 보은 출생, 경북대학교 독문학과 졸업.
애틋하다 못해 심장을 짓찢는 사연의 시다.
찔레꽃을 만지면 붉은 울음이 손끝에 닿아 전율이 이는 첫사랑 꽃이다.
앙증맞은 찔레꽃은 무언지 모를 그리움과 애틋함이 심장을 찌른다.
화자는 심장을 찌르는 것이 그리움이 아니라 찔레나무 덤불이라 믿고 싶었을 것이다.
오월은 그렇게 가고 유월 초여름이 왔으나 아직도 찔레꽃이 만발하니 화자의 마음은 오죽하겠는가.
*출처: 빛나는 세상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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