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사랑은, 꽃피는 얼룩이라고 / 김선우
네가 있던 자리에는 너의 얼룩이 남는다
강아지 고양이 무당벌레 햇빛 몇 점
모든 존재는 있던 자리에 얼룩을 남긴다
환하게 어둡게 희게 검게 비릿하게 달콤하게
몇 번의 얼룩이 겹쳐지며 너와 나는
우리가 되었다
내가 너와 만난 것으로 우리가 되지 않는다
내가 남긴 얼룩이 너와
네가 남긴 얼룩이 나와
다시 만나 서로의 얼룩을 애틋해할 때
너와 나는 비로소 우리가 되기 시작한다
얼룩이 얼룩을 아껴주면서
얼룩들은 조금씩 몸을 일으킨다
서로를 안기 위해
안고 멀리가면서 생을 완주할 힘을 얻기 위해
*출처: 김선우 시집 『내 따스한 유령들』, 창비, 2021.
*약력: 1970년 강원도 강릉 출생(여성), 강원대 국어교육학과 졸업.
본바탕에 다른 빛깔의 점이나 줄 따위가 뚜렷하게 섞인 자국이나
액체 따위가 묻거나 스며들어서 더러워진 자국이 ‘얼룩’의 사전적 의미이다.
이렇듯 얼룩은 깨끗함이 아닌 더러움을 연상한다.
그러나 시인은 너와 나의 얼룩이 겹쳐지는 것, 즉 서로에게 스며드는 것을 말한다.
너와 내가 남긴 얼룩이 만나 서로의 얼룩을 애틋해하고, 서로의 얼룩을 아껴주고,
서로의 얼룩을 안아 일으켜 줄 때 서로에게 생을 완주할 힘이 되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랑은, 꽃피는 얼룩이지 않겠는가.
*출처: 빛나는 세상 - Daum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