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영찬이와 영심이는 누구를 닮았나 / 박제영

믈헐다 2022. 7. 19. 05:27

영찬이와 영심이는 누구를 닮았나 / 박제영

 

영찬이 그눔아 고시 포기하고 취직한단 게 기껏 복덕방이 뭐래?

그게 언젯적 일인데 왜 또 그놈의 복덕방 타령이래유 글구 복덕방이 아니라 부동산 컨설팅 회사라잖아유

그게 복덕방인겨 법대 나와서 복덕방이 뭐여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는 법인디 고작 5년 만에 포기하는 그기 사내새끼가 할 일이냐 이 말이여 누굴 닮아 그러나 몰러

이 양반이 애먼 사람을 왜 또 긁는대유

영심이 그년도 똑같애 남들 다 부러워하는 이대 대학원까지 나왔으면서 맨날 빈둥거리는 꼴 좀 봐 애들이 다 누굴 닮았나 몰러

시방 그게 말이유 가마니유 영찬이 영심이가 가씨유 마씨유 누구 씨유 글구 영심이가 뭘 빈둥거려유 공무원 준비한다고 그러는 거잖아유

그러니까 하는 말이여 이대 나온 애가 7급도 아니고 9급이 뭐여 그럴 거면 대학원은 왜 댕겼대

그런 당신은 택시 몰 거면 대학은 왜 댕겼대유 그리 잘났으면서 회사는 왜 짤렸대유

 

에라 만득아

에라 구신아

또 다시 가리봉동 전쟁이 벌어진 것인데

영찬이는 누구를 닮았나

영심이는 누구를 닮았나

만덕 씨와 귀순 씨 둘이 낳아놓고는

서로 모른다 하네

 

가리봉동 61년 소띠 마귀순 씨 / 박제영

 

아줌마, 8번에 갈비 2인분 추가요!

아줌마, 뭐해 9번에 냉면 네 그릇이요!

아줌마, 빨리 좀 닦아요 퇴근 안 할 거예요?

 

그놈의 아줌마 소리,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 되어서야

야간 식당 일을 겨우 끝낸 귀순 씨

현관문을 열기가 무섭게

배고파 밥 줘

남편은 오늘도 밥타령이다

 

여편네가 귀꾸녕이 막혔나

밥 좀 달라니까

 

에라 화상아

에라 만득아

차라리 귀신이나 되어서

저 만득일 잡아묵을까 싶다가도

불쌍한 저 만득이 내 없으면 또 어찌 살까 싶은 것이니

 

여자가 공부하면 팔자가 드센 법이다 귀순이 니는 대학 같은 건 꿈도 꾸지 말고 그저 남동생들 뒷바라지만 잘하면 된다 쫄딱 망해먹은 아버지, 망할 놈의 유언, 그래도 아버지는 아버지요 유언은 유언이라, 일찌감치 대학 포기하고 여상을 졸업한 마귀순 씨 은행에 취업해서 가장 노릇하며 남동생들 대학까지 보냈는데, 싫다 해도 너 없인 못 산다며 일 년을 쫓아다닌 그 뚝심에, 탄탄한 중견 기업의 대리에, 이만하면 되었다 싶어 가만덕 씨랑 결혼해서 아들딸 낳고, 삼십여년 아무 탈 없이 잘 살았다는데,

 

가리봉동 소갈빗집에서 불판을 닦고 있는 61년 소띠 마귀순 씨는 어쩌다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걸까

 

아줌마, 아줌마, 그놈의 아줌마

언놈이 꿈속에서도 귀순 씨를 부르나

아줌마 없다

 

*출처: 박제영 시집 『안녕, 오타벵가』, 달아실, 2021.

*약력: 1966년 강원도 춘천 출생, 달아실출판사 대표.

 

 

이 두 개의 시는 서사와 사설에 가까운 좀 특이한 시이다.

풍자와 해학으로 우리 사회의 병폐를 그대로 드러내어,

마치 신명나는 한판 굿이나 마당놀이를 보는 듯하다.

그러나 시인의 푸념 섞인 소리가 한바탕의 웃음 뒤에 서글픔이 진하게 묻어난다.

58년 개띠 가만덕 씨와 61년 소띠 마귀순 씨 부부는 가상의 인물이다.

단지 이 부부가 사는 모습을 통해 이 시대의 민낯을 보여주고 싶다고 시인은 말한다.

 

*출처: 빛나는 세상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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