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을 깎는 것은 / 고영민
평상에 앉아 손톱을 깎는다
부러 깊숙이 손톱을 깎는다
손톱을 깎는 것은
참, 사소한 일
튕겨나간 손톱을 하나 둘 주워
치마폭에 모아놓는 것도
참, 사소한 일
차례대로 오른쪽 엄지에서
왼쪽 새끼손톱까지 다 깎는 동안
열 개의 손톱들이 치마폭에
다 모아지는 동안
손톱 아래 그 새살의 감촉이
간지럽게
손 끝에 남아 있는 동안
둥그런 등짝 너머,
뜨거웠던 발은 천천히 식고
온종일 꽃잎을 다물고 있던
달맞이는 그새, 노란
말문을 트고
*출처: 고영민 시집 『공손한 손』, 창비, 2020.
*약력: 1968년 충남 서산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도 시인의 눈에는 시로 보인다.
화자가 손톱을 깎는 찰나에 달맞이꽃이 꽃망울을 터뜨렸다.
찰나란 한번 눈을 뜨고 감은 시간보다 짧은 시간인 눈 깜짝 할 새를 말함이다.
온종일 꽃잎을 다물고 있던 꽃이 그사이에 꽃망울을 터트렸다고 하니 터무니가 없을까.
그러나 자연의 눈길로 바라본다면 그 찰나를 느낄 수 있지 않겠는가.
*출처: 빛나는 세상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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