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손톱을 깎는 것은 / 고영민

믈헐다 2022. 8. 1. 00:44

손톱을 깎는 것은 / 고영민

 

평상에 앉아 손톱을 깎는다

부러 깊숙이 손톱을 깎는다

손톱을 깎는 것은

참, 사소한 일

 

튕겨나간 손톱을 하나 둘 주워

치마폭에 모아놓는 것도

참, 사소한 일

 

차례대로 오른쪽 엄지에서

왼쪽 새끼손톱까지 다 깎는 동안

 

열 개의 손톱들이 치마폭에

다 모아지는 동안

 

손톱 아래 그 새살의 감촉이

간지럽게

손 끝에 남아 있는 동안

 

​둥그런 등짝 너머,

뜨거웠던 발은 천천히 식고

온종일 꽃잎을 다물고 있던

달맞이는 그새, 노란

말문을 트고

 

*출처: 고영민 시집 ​『공손한 손』, 창비, 2020.

*약력: 1968년 충남 서산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달맞이꽃)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도 시인의 눈에는 시로 보인다.

화자가 손톱을 깎는 찰나에 달맞이꽃이 꽃망울을 터뜨렸다.

찰나란 한번 눈을 뜨고 감은 시간보다 짧은 시간인 눈 깜짝 할 새를 말함이다.

온종일 꽃잎을 다물고 있던 꽃이 그사이에 꽃망울을 터트렸다고 하니 터무니가 없을까.

그러나 자연의 눈길로 바라본다면 그 찰나를 느낄 수 있지 않겠는가.

 

*출처: 빛나는 세상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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