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 / 문동만
아내와의 싸움이 길다
비가 라일락을 덮치며 쏟아진다
꽃은 공중에 뿌린 제 향기를 거둬 땅 밑의
외롭고 쓸쓸한 것들로 옮기는 참이다 다행이다
끝물의 꽃과 대찬 봄비는 참 좋은 합일이어서
나 없이도 세상 잘 돌아간다, 그걸 일찍 알아서 쓸쓸했다
네가 꽃을 떨구고 이파리를 세울 때
방바닥조차 바꿀 수 없는 이 무기력한 노동이,
이기지 못하는 술이, 먼저 심술난 개새끼처럼
짖어대는 내 심통이 다 싸움거리였던 게다
사는 게 어려운 날엔 늘 벌금이나 세금이 나왔고
깊이 잠들지 못했다, 다시는 가지 않을 술집을 전전했다
그러니 아내는 말라가며 나에게 저항했던 게다
먼발치 있는 너를 생각한다 너는 어둡고
따뜻한 모토(母土)에서 내 말을 들을 것이다
나는 결핍을 말하고 너는 낙화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저 비가 전령일 게다
잠시 어두움이 우릴 말하게 했나보다
*출처: 문동만 시집 『그네』, 창비, 2009.
*약력: 1969년 충남 보령 출생, 1994년 계간 《삶 사회 그리고 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 시작.
누구든지 부부 싸움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서로에게 더 큰 상처를 만든다.
화자도 아내와의 싸움이 길어진 상태라 답답하기가 그지없다.
왜 하필 사는 게 어려울 때 늘 벌금이나 세금 고지서가 날아오는지도 참 딱할 노릇이다.
원래 엎친 데 덮친다고 집안의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바깥일도 그렇다.
그러면 힘은 빠지고 신경질만 늘 수밖에 없지 않은가.
떨어지는 꽃과 흐르는 물이라는 뜻으로, 가는 봄의 경치나
남녀가 서로 그리워함을 이르는 말인 ‘낙화유수(落花流水)’라는 말이 있다.
어차피 떨어지는 꽃이라면 부디 눈보라처럼 꽃보라가 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출처: 빛나는 세상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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