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 오탁번
할아버지 산소 가는 길
밤나무 밑에는
알밤도 송이밤도
소도록이 떨어져 있다
밤송이를 까면
밤 하나하나에도
다 앉음앉음이 있어
쭉정밤 회오리밤 쌍동밤
생애의 모습 저마다 뚜렷하다
한가위 보름달을
손전등 삼아
하느님도
내 생애의 껍질을 까고 있다
*출처: 오탁번 시집 『손님』, 황금알, 2006.
*약력: 1943년 충북 제천 출생,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와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화자는 성묫길에 떨어져 있는 밤송이를 까는 이야기를 통하여
저마다 다른 생애의 모습을 비춰 본다.
밤송이를 까면 보통 세 톨이 들어있는데, 이는 삼정승을 의미하기도 한단다.
그러나 드물게는 속에 알이 들지 아니하고 껍질뿐인 쭉정밤,
밤송이 속에 외톨로 들어앉아 있는 동그랗게 생긴 회오리밤,
한 껍데기 속에 두 쪽이 들어 있는 쌍동밤 따위가 있다.
이처럼 우리의 생애도 밤송이처럼 저마다 뚜렷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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