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밤 / 오탁번

믈헐다 2022. 9. 10. 00:21

밤 / 오탁번

 

할아버지 산소 가는 길

밤나무 밑에는

알밤도 송이밤도

소도록이 떨어져 있다

 

밤송이를 까면

밤 하나하나에도

다 앉음앉음이 있어

쭉정밤 회오리밤 쌍동밤

생애의 모습 저마다 뚜렷하다

 

한가위 보름달을

손전등 삼아

하느님도

내 생애의 껍질을 까고 있다

 

*출처: 오탁번 시집 『손님』, 황금알, 2006.

*약력: 1943년 충북 제천 출생,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와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화자는 성묫길에 떨어져 있는 밤송이를 까는 이야기를 통하여

저마다 다른 생애의 모습을 비춰 본다.

밤송이를 까면 보통 세 톨이 들어있는데, 이는 삼정승을 의미하기도 한단다.

그러나 드물게는 속에 알이 들지 아니하고 껍질뿐인 쭉정밤,

밤송이 속에 외톨로 들어앉아 있는 동그랗게 생긴 회오리밤,

한 껍데기 속에 두 쪽이 들어 있는 쌍동밤 따위가 있다.

이처럼 우리의 생애도 밤송이처럼 저마다 뚜렷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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