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 꽃 팬티 / 정일근
어머니 병원 생활하면서
어머니 빨래 내 손으로 하면서
칠순 어머니의 팬티
분홍 꽃 팬티라는 걸 알았다
어머니의 꽃피던 이팔청춘
아버지와 나눈 사랑의 은밀한 추억
내가 처음 시작된 그곳
분홍 꽃 팬티에 감추고 사는
어머니, 여자라는 사실 알았다
어느 호래자식이
어머니는 여자가 아니라고 말했나
성(性)을 초월하는 거룩한 존재라고
사탕발림을 했나
칠순을 넘겨도
팔순을 넘겨도
감추고 싶은 곳이 있다면
세상 모든 어머니는 여자다
분홍 꽃 팬티를 입고 사는
내 어머니의 여자는
여전히 핑크 빛 무드
그 여자 손빨래하면서
내 얼굴 같은 색깔로
분홍 꽃물 드는데
*출처: 정일근 시집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문학과 지성사, 2009.
*약력: 1958년 경남 진해 출생, 경남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과 졸업.
우리는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딸을 바라보는 시선은 각기 다르다.
동일한 인격체로서 바라보기보다 관계와 소유의 관점에서 바라본 탓이기도 하다.
사실 자식이라도 아들이 어머니의 속옷을 손빨래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아마 화자는 어머니의 병간호를 하였기에 그럴지도 모른다.
결국 이 시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애틋함을 통해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시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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