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어의 못을 뽑고 / 복효근
사랑했노라고 그땐
또 어쩔 수 없었노라고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도 모를 너를 찾아
고백하고도 싶었다
그것은 너나 나의 가슴에서 못을 뽑아버리고자 하는 일
그러나 타이어에 박힌 못을 함부로
잡아 뽑아버리고서 알았다
빼는 그 순간 피식피식 바람이 새어 나가
차는 주저앉고 만다
사는 일이 더러 그렇다
가슴팍에 대못 몇 개 박아준 채
정비소로 가든지 폐차장으로 가든지
갈 데까지는 가는 것
갈 때까지는 가야 하는 것
치유를 꿈꾸지 않는 것
꿈꾼대도 결국 치유되지 않을 것이므로
대못이 살이 되도록 대못을 끌어안는 것
때론 대못이
대못 같은 것이
생이 새어 나가지 않게 그러쥐고 있기도 하는 것이다
*출처: 복효근 시집 『따뜻한 외면』, 실천문학사, 2013.
*약력: 1962년 전라북도 남원 출생, 전북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졸업.
결혼 생활을 오래 하다보면 서로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사건이 생길 수 있다.
서로에게 박은 대못 몇 개쯤은 큰 탈이 아니라 자위하며 안고 살아갈 뿐이지만
대못 중 한두 개는 아주 위험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타이어에 박힌 대못을 빼는 순간 차가 주저앉듯이
생이 새어 나가지 않게 그러쥐고 있는 것뿐이라고 화자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개인마다 온도 차이만 다를 뿐, 시간이 지날수록 애정이 무뎌지는 탓도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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