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숨바꼭질 / 박진이

믈헐다 2022. 10. 4. 11:36

숨바꼭질 / 박진이

 

숨어 있는 시간을 혼자 있는 시간이라 믿었지

어디선가 분명 나를 찾고 있는 몇 명의 아이들이 있어

 

나를 세워두고

열을 세는 동안

모두 숨기로 했지

 

눈을 감고 있으라 했고

나는 열이라는 숫자에 집중했지만

여섯이나 일곱을 자주 아홉으로 혼동했어

 

혼자 할 수 있는 놀이란 게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는 것처럼

아무도 찾지 않아도 되는 술래처럼

금세 시시해지는 일이라서

 

아이들이 놀다 간

텅 빈 놀이터 안에

나는

그렁그렁 괴어 있는 것만 같아

 

꼭꼭 숨어라

두 눈을 감았다 뜨면

다시

해가 기울곤 했지

 

아무도 나를 찾지 않을 때

내가 찾아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는 것이었지

지금도 여전히

 

*출처: 박진이 시집 신발을 멀리 던지면 누구나 길을 잃겠지, 걷는 사람, 2019.

*약력: 2015년 영남일보 신춘문예에 시 신발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제와 하나하나의 시어들을 살펴보면 동시 같기도 하다.

숨바꼭질이라는 단어는 어린이들의 전유물이라 여겨지고,

하물며 미사여구는 물론이고 어려운 낱말조차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왠지 깊어가는 가을에서 느끼는 적막함이 밀려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 이런 것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시라는 것을 새삼 느껴진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을 때 / 내가 찾아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 우는 것이었지 / 지금도 여전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