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을 메우다 / 이상국
마당에 손바닥만 한 못을 파고 연(蓮) 두어 뿌리를 넣었다
그 그늘에 개구리가 알을 슬어놓고 봄밤 꽈리를 씹듯 울었다
가끔 참새가 와 멱을 감았다
소금쟁이와 물방개도 집을 지었다
밤으로 달이나 별이 손님처럼 며칠씩 묵어가기도 했다
날이 더워지자 개구리를 사랑하는 뱀도
슬그머니 산에서 내려왔는데
그와 마주친 아내가 기겁을 한 뒤로
장에 나가 개 한 마리를 구해다 밤낮으로 보초를 서게 했다
그사이 연은 막무가내 피고 졌다
마당이 더는 불미(不美)하지 않았으나
마을에 젊은 암캐가 왔다는 소문이 나자
수컷들이 몰려들어 껄떡대는 바람에 삼이웃이 불편해했고
어쩌다 사날씩 집을 비울 때면 그의 밥걱정을 해야 했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못을 메워버렸다
마당에 평화가 왔다
*출처: 이상국, 『달은 아직 그 달이다』, 창비, 2016.
*약력: 1946년 강원도 양양 출생, 방송통신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강원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박사과정 수료.
화자는 마당에 자그마한 연못을 만들어 연을 두어 뿌리 넣었다.
연못이 생기자 자연스레 개구리들이 알을 낳으러 모여들고 울기 시작한다.
개구리 울음소리에 산에서 내려온 물뱀 한두 마리도 연못에 보인다.
생태계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목가적인 풍경이 그려진다.
그러나 정작 시인의 아내가 뱀을 보고 기겁을 한 것이 문제이다.
개 한 마리를 사다가 보초를 서게 했는데 이번에는 동네 수캐들이 난리이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연못을 메워버리니 마당에는 평화가 왔다지만
화자의 작은 소망마저 메워버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참고
'슬다'는 곰팡이나 곤충의 알 따위가 생긴다는 뜻.
'슬어놓다'의 '놓다'는 보조동사이므로 '슬어√놓다'가 바른 표기이다.
'불미(不美)'는 아름답지 못하고 추잡하다는 뜻.
'껄떡대다'는 매우 먹고 싶거나 갖고 싶어 연방 입맛을 다시거나 안달한다는 뜻.
'삼이웃(三이웃)'은 이쪽저쪽의 가까운 이웃이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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